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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5월호 18-20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에서의 성서 교육

북부 ‘이탈리아’의 ‘아드리아’ 해 부근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 있다. 전 국토는 61평방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사면 팔방이 ‘이탈리아’ 공화국에 의해 둘러 싸여 있는 독립 공화국인 ‘산 마리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인 ‘산 마리노’로 들어 가면서, 방문객들은 중세 양식의 건물들을 보고는 이내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달마시아’(현재의 ‘유고슬라비아’의 해안 지방)에서 온 ‘마리누스’라는 이름의 석공이 기원 4세기에 그 공화국을 설립하였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인 박해를 피해 그 곳으로 도망했다.

‘산 마리노’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은 약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한 연로한 ‘이탈리아’인 남자 간호원이 이 공화국 주민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해 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반대를 받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지방 경찰은 여러 차례, 그를 국경으로 호송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 남자 간호원은 성서에 언급된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을 본받아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하였다. (사도 5:29) 그는 ‘산 마리노’ 주민들에게 계속 성서 진리를 전파하였다.

그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한 연로한 부인이 성서의 소식에 주의깊이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그 부인은 자신이 배운 것을 진리로 받아들였으며 침례를 받았다. 나중에,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을 반대한 그 부인의 가족 성원 중 몇명도 그렇게 하였다. 1968년 8월에 ‘산 마리노’의 작은 ‘여호와의 증인’ 집단은 9명으로 증가하였다. 처음으로 ‘왙취 타워’ 협회의 여행하는 대표자가 그들을 방문하였을 때, 31명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참석하였다. 그때 왕국회관은 ‘산 마리노’의 서부 국경 바로 너머의 ‘이탈리아’ 구역에 소재해 있었다.

얼마 후 몇명의 ‘산 마리노’ 시민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이제 미래의 증가를 위한 견고한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그 지방 ‘증인’들은 그 지역에서 자유로이 전파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찰이 활동을 중지시키려 하였지만, 그들이 ‘산 마리노’ 시민들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호별 방문으로 전파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더는 방해하지 않았다.

1971년에 ‘산 마리노’의 ‘여호와의 증인’의 수는 17명으로 증가하였다. 같은 해에 ‘왙취 타워’ 협회 ‘이탈리아’ 지부는 이 집단이 회중으로 조직되도록 추천하였다. 1972년에는 왕국회관을 ‘산 마리노’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국은 ‘산 마리노’에서의 ‘여호와의 증인’의 최초의 순회 대회를 위해 정부 청사인, ‘쿠르사알’의 사용을 허가해 주었다. 그 대회에 1,749명이 참석하고 35명이 침례받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지방 ‘증인’들에게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현재 ‘산 마리노’ 회중 성원은 70명으로 증가하였다. 1980년 그리스도의 죽음 기념식에는 무려 134명이 참석하였는데, 이것은 공화국 인구 매 151명 중 한명에 해당하는 수였다. 현재 ‘산 마리노’ 주민 257명마다 한 명의 ‘증인’이 있다.

때때로 이 공화국의 ‘가톨릭’ 교직자들이 설교단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교육 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지만, 종종 ‘산 마리노’ 주민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교육 사업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의 소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생활에 놀라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 전에, 호별 방문을 하는 도중, ‘증인’들은 진지한 관심을 나타낸 한 부인을 찾게 되었다. 그 부인과 정기적인 성서 토론이 있게 되었으며, 마침내 이 부인은 침례를 받게 되었다. 그의 시어머니도 ‘증인’이 되었다. 다른 가족 성원들은 세속 활동에 깊이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러나 지방 회중의 두 장로가 몇 차례의 우정적인 방문을 하였으며 결국 정기적인 성서 토론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그 가족 중 여덟명이 자신의 생활을 성서 원칙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내었다.

이 가족의 한 성원은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반대를 겪게 되었다. 사실 한 ‘가톨릭’ 사제가 그 여자에게 ‘여호와의 증인’과의 더 깊은 성서 연구를 포기한다는 성명서에 서명하라는 압력을 가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 이 여인은 결혼을 하여 국외로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산 마리노’로 돌아온 즉시 다시 한번 성서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인은 “아무도 진리를 잊을 수는 없읍니다”라고 말하였다. 처음에 이 여인의 남편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사해 보기로 결정하였고, 마침내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켜 주는 성서의 힘 덕분에, 이제 이 가족은 참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는 데 강하게 연합되어 있다.

참 그리스도인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활동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 (마태 24:14) 행복하게도 이 일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에서까지도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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