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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로부터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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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7/15 335-336면

독자로부터의 질문

● 고린도 후 12:2, 4에서 언급한 “세째 하늘”과 “낙원”이란 무엇입니까?—미국의 ‘알. 비. 시.’

고린도 후서 12:2-4에서, 사도 ‘바울’은 “세째 하늘에 이끌려”가서 “낙원”으로 들어 간 사람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성경에는 그러한 경험을 한 어떤 사람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으므로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의 경험이었던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세째 하늘”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초기 ‘랍비’들의 견해와 관련지으려고 애써 왔읍니다. 초기 ‘랍비’들의 견해란 하늘에는 층계가 있다고 하며 심지어 도합 “일곱 하늘”이 있다고 하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문맥을 조사해 볼 때, 그 사도는 지구의 대기권 공간이나 혹은 외계의 공간에 있는 하늘들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린도 후 12:1-4.

그러므로 “세째 하늘”에 관한 말은 영적 하늘에 관하여 말하는 것 같으며 이 환상을 본 상태가 최상의 정도의 황홀경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점에 관하여, 우리는 이사야 6:3, 에스겔 21:27, 요한 21:15-17 및 계시 4:8 등에서 단어들이나 혹은 표현들이 세번 반복된 것을 살필 수 있으며, 그 목적은 분명히 그 질이나 혹은 사상을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읍니다.

“세째 하늘”에 끌려 들어가서, 환상을 본 자는 낙원에 들어갔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 환상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이해하는 열쇠를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회복에 관한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중에서 발견할 수 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된 땅으로부터 황폐된 고향으로 회복될 것에 관한 거룩한 약속들이 이 성서의 많은 예언서 중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버려진 땅이 경작되고 씨 뿌려져서 풍성한 수확을 내며 사람들과 동물들로 가득차게 하실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도시들은 재건되고 사람들이 거주하게 될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었읍니다.—에스겔 36:6-11, 29, 30, 33-35; 그리고 다음 귀절들을 비교하십시오. 이사야 51:3; 예레미야 31:10-12; 에스겔 34:25-27.

그러나 이들 예언에서도 낙원 상태를 사람들 자신에 관한 상태에 관련시켰음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 충실함으로써 그들은 이제 “움돋게” 되어 “의의 나무”로 무성하게 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소나기처럼 받은 “물댄 동산”같이 아름다운 영적 번영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읍니다. (이사야 58:11; 61:3, 11; 예레미야 31:12; 32:4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 포도 나무를 심으셨지만, 그들의 악행과 참 숭배로부터의 배교는 그 땅에 문자적인 황폐가 발생하기 전에도 이미 그들의 영적 밭이 상징적으로 말라비틀어져 가게 만들었읍니다.—출애굽 15:17; 이사야 5:1-8; 예레미야 2:21을 비교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환상으로 본 낙원은 육적 ‘이스라엘’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영적 상태를 의미할 수 있읍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 회중도 또한 하나님의 “밭” 즉 그의 영적 포도원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박고 하나님께 찬양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잘 이해할 수 있읍니다. (고린도 전 3:9; 요한 15:1-8) 이처럼 ‘이스라엘’ 나라 대신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되었읍니다.—마태 21:33-43을 비교하십시오.

그러나 ‘바울’의 환상은 논리적으로 볼 때 반드시 어떤 장래에 적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는 배교가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으며 ‘바울’의 시대에 이미 활동하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밭에 가라지가 덧뿌리운 상태와 같이 될 것이었읍니다. (마태 13:24-30, 36-43; 사도 20:29; 데살로니가 후 2:3, 7; 그리고 히브리 6:7, 8을 비교하십시오.) 그러므로 ‘바울’의 낙원 환상은 이치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일어나고 있던 그때에 적용될 수 없읍니다. 오히려 그것은 틀림 없이 “추수 때”에 적용될 것입니다. 즉 추수 때에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천사들인 추수군들에 의하여 모여질 것이었으며 풍성한 축복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번영을 즐길 것이었읍니다.

오늘날 살고 있는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지금 그들 중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영적 번영으로 알 수 있듯이, 진실로 영적 낙원을 즐기고 있읍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건설된 왕국하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영적 번영은 그리스도교의 초창기인 사도들 시대에 즐겼던 것보다, 그 영광이 더 큽니다. 오늘날에 영적 번영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양의 “큰 무리”들이 있으며,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이 땅 위에 있을 문자적 낙원을 즐길 것을 바라고 있읍니다.—계시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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