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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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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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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9/15 411-412면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부’ 섬에 처음으로 십자가를 꽂고 첫 ‘미사’에 참석한지 거의 450년이 흐르는 동안, ‘필리핀’은 “극동의 유일한 그리스도교국”으로서 흔히 불리어 왔다.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필리핀’ 인구 중 83%가 ‘가톨릭’교인들이고 10%의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매우 종교심이 강하여서 일요일과 공휴일이면 수백만명이 교회로 몰려들어 활기있고 번창하는 그리스도교의 나라라는 인상을 준다. 「타임」지가 교회 참석 실정을 “인생의 사양 길” 같다고 논평한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필리핀’의 교회들은 흔히 차 넘칠 정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필리핀’ 교회들의 외면상의 건전한 모습과는 달리 여기에도 만사가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징조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욕구를 더욱 만족시킬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 교회를 떠나고 있다. 예를 들면, 작년만 해도 ‘케손’ 시 ‘타야바스’에 사는 68세된 노파는 ‘가톨릭’ 평신도 지도자로서 거의 일생 동안을 보내고도 개종하기 위하여 교회를 떠났다. ‘칼루칸’ 시에 사는 한 남자는, 십대에 성가대의 일원이 된 이래 교회에서 활동적으로 일해 왔고, ‘아라네타’ 대학교에서 ‘가톨릭’ 활동반 대표로 봉사했지만, 그 역시 1969년에 개종하였다. 또 다른 신도 한 사람은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교회 마루에서 제단까지 무릅으로 걸어가곤 했고, 오랫 동안 수도회의 수도 생활을 이끌어왔지만 지난 해 ‘가톨릭’교를 떠났다.

그러한 신자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 어느 면인가 교회에 책임이 있는가? 1970년 3월 27일자 「마닐라 타임즈」지의 “바이 더 웨이”란의 필자 ‘맥시모 솔리벤’이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이 바로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아하, ‘필리핀’인들 사이의 그리스도교는 헌 신발처럼 안일하고 통속화되었다. 한 때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비대해졌고, 그리고는 자기 만족에 빠져버렸고, 그 다음 국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힘을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그리스도의 태도와 상반되는 것이라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키려고 땅에 오셨으며, 그분은 남자답고 강력한 그리스도이셨지 나약하고 연약한 수도승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단지 기도만 하라고 하시지 않고 행할 것을 요구하셨다.”

한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필리핀’ 감독교회 국제회원 집행부 이사는 이틀 후 동 신문에 비슷한 탄식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비록 우리가 사도 신경에 나오는 부활과 안식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믿는 바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다. ··· 우리 세대의 그리스도교 교회는 인류와 사회에 대한 자체의 사명에 있어서 실패하였다. 그렇지만 내 의견에는 예수의 생활 방법과 관련된 문제는 부족함을 찾아 발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방법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에 관한 이와 같은 논평들이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필리핀’ ‘가톨릭’교인들이 성서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는 사실로서 알 수 있다. 자기 집에 성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마닐라 산타크로스’에 사는 한 남자는 “나는 지금 60살입니다. 내 양친과 조부모들 모두가 ‘가톨릭’ 신자였읍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나는 ‘가톨릭’교를 떠났읍니다. 왠고 하니 나는 기도책과 묵주 사용법 외에는 배운게 없읍니다. 그것도 늘 변함없이 똑같은 식으로 사용해 왔읍니다”라고 말하였다.

많은 교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은 ‘가톨릭’ 평신도들의 영적인 무지에 관하여 일깨워지고 있다. 평신도 지도자 ‘예레미야 몬티메이어’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주교들과 사제들은 말하고 평신도들은 듣게 되어 있었읍니다. 주교들과 사제들은 결정하고 평신도들은 따라야 하였읍니다”고 말하였다. (‘고딕’체는 그의 것임) 이것을 변경시키려는 시도로, 평신도에게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는 3일간의 과정인 ‘쿠르실로’라는 것이 1964년에 소개되었다. 최근에 ‘마닐라’에서 ‘쿠르실로’ 운동의 지도자 200명이 모임을 가진 후 ‘벤 레이 가레온’ 사제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주교들과 사제들을 포함하여 얼마의 지도자들은 이미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보다 개종자들의 숫자에 있어서 득을 계산하는 많은 ‘쿠르실리 스타스’(‘쿠르실로’ 졸업생)의 경향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의 교회가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보다는 신도 수를 늘리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느끼는가?

‘마닐라’ 대주교 ‘루피노 카르디날 산토스’는 1970년 “부활제” ‘메시지’에서 “비록 모교회(母教會)가 성령을 으뜸가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교회는 인류의 지상에서의 복지와 발전을 함양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인류의 지상에서의 복지를 함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가 믿음과 영적인 면을 세워 주는 ‘근본’ 책임을 포기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전 ‘가톨릭’ 활동 지도자 한 사람은 ‘가톨릭’ 교인으로서의 일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가톨릭’ 신앙은 엄격히 말하여 영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는 ‘피크닉’, ‘프로그램’, ‘파티’ 등으로 대중적인 쾌락을 고조시켜 왔다. 내가 이전에 다니던 교회는 종교적인 것보다 ‘컨트리 클럽’에 더 치중하였다”고 하였다. 당신의 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실정이 있음을 경험하는가?

다른 성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교회가 너무나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제들이 국가적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특히 최근의 학생들의 실행주의에 대해서 그러하다.” 당신은 “내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그가 만일 지금 이 땅에 계시다면 그러한 일에 관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요왕 18:36, 천주교역.

적지 않은 ‘필리핀’ 사람들은 93%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나라에서 왜 범죄와 폭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왜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가치를 더 강조하는지 터놓고 의아해 하고 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위선을 비난하며, 수를 알 수 없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명목상”으로는 ‘가톨릭’교인으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만일 그들이 개종하면 하나님과 교회와 그리고 자기들의 부모에게 불충실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인가? 과연 종교를 바꾸는 것은 나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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