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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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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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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12/15 560-564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1. 왜 오늘날은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입니까?

오늘날 일간 신문의 보도를 읽어보면, 사람들이 자기만을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과장하고, 불경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불충실하고, 무정하고, 화해하지 않고, 비방하고, 자제가 없고, 난폭하고, 선에 대한 사랑이 없고, 배신하고, 고집이 세고, 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경건한척 하지만 경건의 힘이 없다는 결론에 쉽게 이르게 됩니다. 많은 악인들이 가일층 악화일로를 걷는 것같습니다. 세상 상태를 그와 같이 사실대로 평가하는 것은 소극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실을 그대로 직면하는 것입니다. 당신보다 먼저 그러한 평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때 당신은 놀랄지 모르겠읍니다. 지금부터 거의 2,000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관하여 예언적으로 기록하였읍니다.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이며 그는 우리 시대를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에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가 올 것이다.” (신세) 그리고 나서 그는 전술한 말을 사용하여 현 시대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묘사하였읍니다.—디모데 후 3:1-5, 13.

2. ‘노아’ 시대의 어떠한 상태가 오늘날과 비슷하며, 예수께서는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 역사상 인간의 악이 땅에 이토록 충만한 때가 또 있었읍니까? 있었읍니다. 창세기 6:5, 11, 12에 있는 인간 역사는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 .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악을 눈감아 두시지 않고 간섭하시고 행동하시어 땅에서 그러한 악행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알 때 위안이 됩니다. 성서에 있는 이러한 말과 다른 말씀은 악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줍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악한 때에 행동을 취하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어려운 때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원수들 가운데서 다스리시는 천적 왕으로서 임재하여 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지상에 계실 때 예수께서는 마태 24:37-39에 있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셨읍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같은 장(34절)에서 예수께서는 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말은 가까왔으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오늘날을 마지막 날이라고 부른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시 110:1, 2.

3. 세상 사건들은 일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3 사도 ‘바울’이 언급한 상태가 만연되어 있고 악화일로에 있기 때문에 지상에는 악한 영향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큰 피해를 입습니다. 폭력으로 물든 현시대에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과 지식에 따라 여러 가지 태도를 보입니다. 싸움, 파업, 항의, 폭동, 데모, 실제적 혹은 가정된 학대에 대한 보복 행위가 끊이지 않습니다. 국가주의는 허다한 난문제들을 야기시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폭행을 목적으로 ‘클럽’을 만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사물의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준비를 합니다. 각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어떤 행로를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4. 현 세상 상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4 의심할 여지 없이 어떤 사건들은 말만 들어도 혹은 실제로 당해서 화가 치밀 수 있읍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며 세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요한 15:17-16:4)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더욱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며 여러 세기 전에 기록된 성서 예언들과 일치하게 세상 사건이 나타나는 것을 주시하며 동시에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이 특정한 때에 수행해야 할 행로와 사업을 따르는 일로부터 탈선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기억한다면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분께서는 선한 침례자 ‘요한’이 부당하게 목베임을 당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 사물의 제도에서 많은 그릇된 일과 많은 악을 보았지만 그 당시의 세상을 개혁하려고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보내신 사업을 하셨읍니다. 그는 왕국 소식을 계속 전파하였읍니다.—요한 9:4.

5. 무엇이 원수를 사랑하는 기초가 됩니까?

5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파하시는 바와 일치하게 실천하셨읍니다. 초기의 가르침의 한 가지가 산상수훈에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원수들에게까지도 사랑을 보여야 할 좋은 이유를 밝혀 줍니다. “또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하느니라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 5:43-48) 분명히 이렇게 하는데는 장성된 사고와 자제와 오래 참음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그것을 수행할 수 있읍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제와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입니다.

6, 7. 고통 가운데서도 자제력을 행사하신 예수의 본을 몇 가지 말씀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침착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읍니다. 심지어 그분은 인신 공격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시면서도 보복하시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 부당하게 체포되시려는 순간 그와 함께 있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잘랐읍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쓰는 사람은 모두 검으로 망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당장에 열 두 군단 이상의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줄 아느냐?’” (마태 26:52, 53, 새번역)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최소한 6만 대군의 천사의 지원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제력을 행사하셨읍니다.

7 그 후 갖은 굴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나서 형주에서 돌아가실 때에 예수께서는 증오심을 발하지 않으셨읍니다. 도리어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읍니다. 군중은 서서 쳐다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조롱하며 ‘이 사람이 남을 구원했으니 하나님의 그리스도요 택함을 받은 자라면 자기를 구원하게 하라’ 하고 말했읍니다. 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드리고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거든 자기 자신을 구원하시오’ 하고 말했읍니다.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쓴 패가 있었읍니다.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중의 하나는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당신 자신을 구원하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오’ 하고 예수를 조롱했읍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는 날카롭게 반박했읍니다.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냐? 너도 그이와 같이 선고를 받고 있지 않으냐? 우리는 우리의 범죄로 보응을 받았지만 이분은 아무 것도 잘못한 일이 없지 않으냐?’ 그리고 나서 말했읍니다. ‘예수님, 당신이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새번역) 예수께서 대답하셨읍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누가 23:34-43, 신세.

8.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8 ‘바울’이 마지막 날에 관하여 기록한 같은 장에서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12) 그러므로 모욕과 박해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활의 일면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넓은 이해심과 자제의 본을 숙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니라.]”—베드로 전 2:21-23.

9. 로마서 12장은 험악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충고를 줍니까?

9 기원 제1세기에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리스도를 추종한 사람은 악행자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상당한 학대를 받았읍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로 유명하였읍니다. 그 당시의 살아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숫적으로 매우 강하였지만 그들이 박해를 받을 때에 죄 많은 인간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행로 즉 보복하는 행로를 따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정신을 변화시키므로 그러한 태도를 극복하여야 하였읍니다. 박해를 많이 받은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 12:1, 2, 12, 14, 17-21.

10. 우리는 어떻게 보복의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읍니까?

10 예수와 같은 정신 태도를 갖는 것만이 보복의 심각한 죄를 범하지 않는 길입니다. 그것은 보호의 역할을 하는 일종의 갑옷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라.]”—베드로 전 4:1.

11. (ㄱ) ‘디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왜 그는 이런 변을 당하였읍니까? (ㄴ)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누이가 능욕을 당하였기 때문에 어떤 죄를 범하였읍니까? (ㄷ) 이런 보복 행위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읍니까?

11 우리가 성서를 연구함에 따라 이것이 험악한 시대에 훌륭한 충고가 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예로써 창세기 34장에 기록된 ‘디나’의 경우가 있읍니다. 매우 어리석게도 ‘야곱’의 이 딸은 여호와의 숭배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의 준수자가 아닌 사람들과 사귀었읍니다. 그 결과로 ‘디나’는 ‘세겜’이란 이름의 청년에게 성적인 폭행을 당하였읍니다. ‘디나’는 수치를 당하였읍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보복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매우 분개하여 ‘세겜’의 동족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누이 ‘디나’가 욕을 당한 도시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동생들도 그 도시를 약탈하는데 가담하였읍니다. 후에 ‘야곱’의 임종 시에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가 왔읍니다. ‘아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영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세 49:5-7) ‘시므온’과 ‘레위’의 경우에 악을 악으로 갚은 것은 아무 이익이 없는 죄였읍니다.

12. (ㄱ) ‘시므온’과 ‘레위’와 달리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어떠한 축복을 받았읍니까? (ㄴ) ‘요셉’은 그러한 축복을 얻을만한 어떠한 인생 행로를 추구하였읍니까?

12 반면에 ‘요셉’은 다른 정신을 나타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았읍니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창세 49:26) 일찌기 ‘요셉’은 그의 형들 손에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됨으로써 큰 불행을 당한 바 있읍니다. 여호와의 축복으로 ‘요셉’은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애굽 땅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읍니다. 기근이 들었을 때 그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향하여 여행하였읍니다. 세력이 당당했던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복수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보였읍니다.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을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창세 45:14, 15) 이러한 행로의 결과는 매우 훌륭하였읍니다. 전 가족이 다시 상봉하고 연합하게 되었으며 ‘요셉’의 도움으로 오랫 동안의 기근을 무사히 넘기게 되었읍니다.

13. (ㄱ)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유의 사람들이 많은 악한 일로 고통을 당하였읍니까? (ㄴ) 다윗의 경험은 어떻게 이것을 잘 예증합니까? (ㄷ) 그러한 경험에 비추어 ‘야고보’는 무엇을 충고합니까?

13 ‘야곱’의 후손들이 모두 악한 행로를 취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을 조성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악한 일을 당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 여호와의 예언자들은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 중에 속합니다. 그들은 주로 여호와의 영을 상실하고 육체의 경향에 굴복한 그 민족의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읍니다. 이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존경을 받은 인물 중에 ‘사울’이 있는데 그는 초대 왕이 되었읍니다. 그는 선을 행할 기회가 있었지만 오히려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호와의 은총을 얻지 못하였읍니다. 동시대의 ‘다윗’은 ‘골리앗’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둠으로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였고 미워하게 되었으며 ‘다윗’을 죽이려고 계획하였읍니다. ‘사울’은 직접 창으로 ‘다윗’을 찔러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도피하였읍니다. 수차 ‘사울’은 ‘다윗’에게 악을 행하려 하였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었고 ‘사울’에게 악으로 갚지 않았읍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하여 애석하게 생각하였으며 사건의 처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18:15, 25; 19:10, 11; 24:4-15) ‘다윗’은 악한 일을 감수한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예언자들이 좋은 본을 남기어 우리로 본받게 하였읍니다. 악행자들에 대하여 인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들을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고보 5:10, 11.

[563면 삽화]

‘요셉’의 형들은 그에게 악을 행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전 애굽의 주권자가 된 후에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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