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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로부터의 질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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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7/15 335-336면

독자로부터의 질문

● 만일 ‘이삭’이 기꺼이 희생물이 되고자 하였다면 왜 ‘아브라함’은 그의 손과 발을 결박하였읍니까?—미국의 한 독자로부터.

성서 기록은 ‘아브라함’과 ‘이삭’에 관하여 이렇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 22:9, 10.

‘아브라함’과 ‘이삭’은 둘 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과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숭배자들 명단에 실려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어떤 일이라도 그들에게 명령했다면 그들은 자진적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여호와의 지시였기 때문에 ‘이삭’이 자신을 기꺼이 희생물이 되게 하였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읍니다.

창세 22:9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수족을 결박했다고 진술한다는 사실은 이 결론을 변경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지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플레이비우스 요세퍼스’에 의하면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25세였읍니다. (「유대인의 고대 풍습 제도」 제1권 제8장 제2항). 그 말이 맞다면 ‘아브라함’은 125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연로한 ‘아브라함’이 그의 젊고 건장한 아들을 압도해서 그를 결박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이삭’이 하나님과 자기 아버지께 순종하여 희생되기를 원치 않았다면 그는 반항했을 것이라는 데 거의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를 결박할 때 그가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기꺼이 희생물이 되고자 하였음을 확증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의 부모의 생식력을 회복시키는 기적을 행하였음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분명히 그는 그의 소망을 부활에다 두었읍니다.—히브리 11:19.

어떤 사람이 기꺼이 희생물이 되고자 하였다 하더라도 그를 살해하기 위하여 칼을 사용할 때는 본의 아닌 격렬한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수족을 결박한 것은 그러한 본의 아닌 반응을 방지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흥미롭게도 ‘헤롯’의 성전 뜰에서 바쳐진 어린 양의 희생을 해설하면서 ‘에데르샤임’ 박사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그리고 희생을 드리는 제사장은 보조자들에 에워싸여 어린 양을 제단의 북쪽 면의 두번째 고리에 붙잡아 매었다. . . . 희생물을 양쪽 앞뒷발을 한데 묶은 채로 함께 매었다.” (「성전」 132면) 그리고 ‘아브라함’의 희생물로써 전영된 실제적인 “하나님의 어린 양”도 기꺼이 희생물이 되고자 하였지만 형주에 못박히셨읍니다.—요한 1:29; 히브리 10:9, 10.

●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어떤 면으로 고린도 전 10:4에 기록된 바와 같이 “저희를 따른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읍니까?—미국의 한 독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난 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신 마련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 전 10:3, 4.

사도는 여기서 첫째로 문자적이고, 다음으로 영적인 두 가지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에 관한 앞의 설명을 볼 때 ‘바울’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적으로 공급해 주신 문자적인 식물과 음료를 시사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와에서는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급해 주셨읍니다. 이 실제적인 음식은 기적으로 즉 여호와의 영을 통하여 제조되었으므로 “신령한 식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통하여 그들에게 음료를 공급하셨읍니다. 애굽을 떠난 직후 그들은 물이 필요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모세’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반석을 쳐서 2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가축들에게 물을 보급하셨읍니다. (출애굽 17:5-7) 40년간의 여행이 끝날 무렵에 ‘모세’가 다시 반석을 쳤더니 그 거대한 회중을 위하여 물이 콸콸 솟아나왔읍니다.—민수 20:1-11.

그들은 어떻게 문자적으로 ‘그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마셨읍니까? ‘모세’가 처음에 친 반석이 40년간 그들을 따라 굴러다니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그들은 거의 시초에 그리고 40년의 거의 마지막에 가서 적어도 두 번에 걸쳐 하나님께서 반석으로부터 지급하신 음료를 마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의미로 실제적인 물이 그들을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렇게 막대한 양의 물이 지급되었을 때 그 물은 그들이 얼마 동안 여행하면서 마실 수 있도록 그들을 “따르는” 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그 당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는’ 즉 그들을 좇은 영적인 공급품을 취했음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 즉, 오시기로 약속된 ‘실로’를 고대하고 있었읍니다. (창세 22:18; 49:10) 그들의 죄와 그들의 죄사함의 필요성과 관련있는 희생과 의식은 실체적인 “반석”이신 메시야를 지적하였읍니다. ‘바울’이 다른 곳에서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히브리 10:1; 갈라디아 3: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음식과 음료를 공급해 줌과 동시에 광야에서 그들을 따른 즉 그들을 좇은 영적인 공급품을 지급하셨읍니다. 메시야에 관한 영적인 사물은 그들의 소망과 영적인 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읍니다.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셨을 때는 그로부터 ‘히브리’인들에게 준 실제적인 것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영적인 생명수와 영적 양식이 흘러 나왔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요한 7:37, 38)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마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어 약속의 땅의 생활로도 들어가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를 “거치는 반석”으로 걸려 넘어지지 않은 후대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 영적 물을 주셨읍니다.—로마 9:32, 33; 요한 4: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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