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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로부터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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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5/15 239-240면

독자로부터의 질문

● 요한 18:31에 의하면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죄인에게 사형을 집행할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읍니까?—미국의 한 독자로부터.

그 당시 극형에 대하여 ‘유대’인이 가진 권세의 정도는 좀 불확실합니다. 성전이 멸망(기원 70년)되기 40년전, 즉 기원 30년 경의 ‘유대’인들은 극형, 즉 사형 언도를 하지 않았다고 많은 학자들은 믿고 있읍니다. 이것은 예수를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길 때 ‘산헤드린’ 성원이 한 말과 일치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 말은 이러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요한 18:31.

그러나 ‘로마’인들은 정치적 법을 범한 사람이 아니라 종교적인 법을 범한 사람을 집행할 권리를 ‘유대’인 당국에 허용했을 것입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로마’ 장군 ‘티투스’는 ‘유대’인들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죽이는 것을 ‘로마’인들이 허용했음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유대 전쟁사」 4권 2장 4항) 이것이 일반 정책을 시사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읽은 요한 18:31과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살인자들이었으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죄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요한 8:44; 11:48-53) 그러나 문제가 생겼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거나 존경했기 때문에 예수에 반대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날까 그들은 두려워하였읍니다. (마태 26:4, 5) 그래서 예수를 비밀히 체포한 다음 종교적 혐의로 그를 정죄하고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집행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빌라도’는 그렇게 할 수 있었읍니다. 그가 예수에게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형주]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한 19:10)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정치적 혐의로 죽인다면,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종교적 지도자들의 책임을 면케 해주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자신들이 종교적 법을 범한 사람을 처형할 권세를 가지고 있었든지 혹은 어떤 종류의 극형에 대해서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았든지 간에 그들은 말하자면 아직도 “법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읍니다. 여러 경우에 폭도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읍니다. (요한 8:59; 10:31; 누가 4:29) ‘유대’인들은 폭도들의 행동과 음모에 의하여 예수의 사도들을 없애려고 하였읍니다. (사도 5:33; 9:23, 24; 14:19; 21:27-31; 23:12) 그러므로 법적 권세가 있든 없든 일반 ‘유대’인 장로, 서기관, ‘산헤드린’ 회원은 ‘스데반’의 담대한 연설로 자신들이 죄인되었음을 폭로당하였으며 분노하여 “이를 갈았읍니다”. 폭도들은 분노가 가득차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서 그를 죽였읍니다.—사도 6:12; 7:54-60.

● 예수께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실 때의 ‘사가랴’는 어느 ‘사가랴’였읍니까?—‘캐나다’의 한 독자로부터.

예수께서는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공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태 23:35) ‘누가’의 기록에는 “‘바라갸’의 아들”이라는 말이 빠져있읍니다. (누가 11:50, 51) ‘시내’ 사본의 ‘마태’의 기록에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본의 증거가 뚜렷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를 분명히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서에 ‘스가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20명 이상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이 어느 ‘사가랴’인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어떤 주석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람이 「스가랴서」를 쓴 예언자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가 살해당하였다고 말한 곳은 없읍니다.—스가랴 1:1, 70인역, 듀웨이역.

예수께서 언급하신 ‘사가랴’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라고 보통 널리 이해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요아스’ 왕 당시에 ‘스가랴’는 돌로 쳐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역대 하 24:20-22) 역대기는 전통적 ‘유대’인 경전에서 마지막 순서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결론을 지지해 주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어’ 성서에 살해당한 첫 의인으로 ‘아벨’을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스가랴’가 기록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집 마당”에서 ‘스가랴’가 죽었으며 그 장소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과 제단 사이”와 일치합니다. ‘아벨’과 ‘스가랴’의 경우에 있어서 다 같이 피 흘림에 대한 보응이 예언되었읍니다. (창세 4:10; 역대 하 24:22)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당시와 예수 당시의 세대는 환경과 사건에 있어서 매우 비슷하였읍니다. 제사장 ‘스가랴’가 죽은 후 곧 ‘아람’ 군대가 ‘유다’를 약탈하여 ‘여호와’의 심판을 집행하였읍니다. (역대 하 24:23-25) 예수께서는 그들의 피 흘린 죄를 설명하시면서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 가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36) 그 말씀은 기원 70-73년에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성취되었읍니다.

그러면 ‘스가랴’의 아버지는 누구였읍니까? ‘바라갸’입니까, ‘여호야다’입니까? 나이 많은 제사장 ‘여호야다’(역대 하 24:15)는 실상은 ‘스가랴’의 할아버지였으며 그 아버지 ‘바라갸’는 제사장 족보에는 그 이름이 보존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매우 이치적인 설명을 했는데 살해당한 ‘사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는 다른 성서의 인물들처럼 두 이름을 가졌으리라는 것입니다. (마태 9:9과 마가 2:14 비교) 흥미있게도 ‘바라갸’(‘야’가 축복하신다)의 의미는 ‘여호야다’(여호와께서 아신다 혹은 주목하신다)의 의미와 매우 비슷합니다.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 당시 하나님의 종들의 박해자들을 정죄하시는 데 있어서 예수께서는 타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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