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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로부터의 질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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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11/1 502-504면

독자로부터의 질문

● 성령은 개성을 가진 개체로서의 존재자가 아닌데 어떻게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가능합니까?—미국의 한 독자로부터.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영감받은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행실에 관한 충고 가운데 그러한 말을 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 4:30.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사람들은 한 하나님 안에 세 하나님, 곧 삼위일체 교리를 믿기 때문에 이 귀절을 잘못 해석하였읍니다. 우리는 우리의 출판물을 통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삼위일체라는 것이 성서적 가르침이 아니라 이교에서 유래하였다는 성경적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하였읍니다.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사실」 12장, 「큰 바벨론은 무너졌다 하나님의 왕국은 통치한다」 3장 참조) 따라서 에베소 4:30은 성령은 슬프게 할 수 있는 개체, 하나의 혹은 삼위일체 신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여호와와 동등한 하나의 개체 혹은 하나의 신이라고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성서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는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것은 마치 침례자 요한이 물로 침례를 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 3:16)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물이나, 화염에 집어 넣음으로써 혹은 잠기게 함으로써 물이나 불로 침례를 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느 개인에 침례를 줄수 있겠읍니까? 물이나 불은 개인이나 개체가 아닙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읍니다. 그들이 어느 개인이나 신으로 충만함을 받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사도 1:5, 8; 2:4)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여호와로부터 성령을 받으시어 그것을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부어 주셨읍니다. 성령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한 개체로서의 존재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활동력이었기 때문이었읍니다.—사도 2:33.

바울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편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읍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하늘의 생명으로 불리움을 받았읍니다. 바울은 이 하늘의 반열에 속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영은 인(印) 혹은 “보증”의역할을 하였읍니다. (로마 8:15; 고린도 후 1:22) 그러나 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 성령은 그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였읍니까? 그것은 그들을 충실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인도 혹은 지시하였고 결국에 가서는 죽어서 하늘로 부활되도록 인도하였읍니다. (로마 8:14, 17) 그것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성령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육신의 일”을 피하도록 그들을 도왔읍니다. 또한 그것은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어 영에 의하여 질서 있게 행하고 하나님의 승인을 얻도록 도왔읍니다.—갈라디아 5:19-25.

영감을 받은 즉 성령의 지시 아래서 기록된 성서의 훌륭한 교훈을 무시한 그리스도인은 결과적으로 고의적인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할 수도 있는 태도 혹은 습성을 나타내기 시작할 수도 있읍니다. 그 순간에 그가 죄를 범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후에 결국 성령의 인도와는 반대되는 길로 가게 될 곁길로 빗나갈 수 있읍니다. 그는 바울의 논법을 빌린다면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의 위를 가진 개체는 아니지만, 성서가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의 개성의 표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아름다운 음악을 험하게 연주한다면, 그의 행동은 그 음악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또한 작곡자를 모독하는 것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하나님의 지시하에 있으므로 성령을 불쾌하게 혹은 “근심하게” 하는 것은 여호와를 거역 혹은 슬프게 하는 것이 됩니다.

지상에서 영원히 살고자 희망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영으로 기름부음 받거나 하늘의 생명으로 불리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하늘의 반열 만큼이나, 성령을 많이 받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의식 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영을 “근심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에베소서의 동일한 4장에서 부정직한 말, 분을 품고 있는 것, 나태함 및 부당한 언사 등을 말하였읍니다. 만일 새로운 성품을 입은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일에 빠진다면, 그는 영감받은 성서의 교훈에 거슬러 행하는 것이며, 그는 그의 주위에 있는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영향력과 본을 배격하는 것이 되며,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계속하여 음행과 부끄러운 행실과 음탕한 행실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충고를 주었읍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을 피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오락이나 휴식 시간에 행한 일들을 결정할 때에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서적이나 신문에서 그러한 것을 읽고, 영화나 연극에서 연출되는 것을 구경함으로써 그러한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다른 입장을 고려해 봅시다. 성령은 회중에 연합을 발전시키고 그리스도인들을 종으로 임명하는데 사용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질을 퍼치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분열을 조장한다면, 그는 평화와 연합을 돕는 성령을 거스려 행하는 것이 됩니다. 일반적인 의미로 그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회중에서 회중의 분열을 가져 왔던 사람들은 영의 작용을 저항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 1:10; 3:1-4, 16, 17) 흥미롭게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연합의 중요성도 강조하였읍니다. (에베소 4:1-6, 16) 파괴적인 험담으로, 영으로 임명받은 종들에 대한 존경심을 침식하는 사람도 영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사도 20:28; 데살로니가 전 5:12, 13.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와 오늘날 그리스도인 조직에서 반영되는 바에 따라, 자기가 영의 인도라고 생각하는 바에 비추어 자기의 행실과 태도를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영과 협조하며, 결국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성령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는 길 곧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굽은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1:14, 15에서 말한대로,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은 영광이나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은 수치임을, 어떻게 “본성이 가르”칩니까?—캐나다의 한 독자로부터.

이 말은 바울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의 여자의 위치에 관하여 기록한 바를 증명하기 위하여 한 말인데, 고린도인들에게 매우 의미깊은 말이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라].” (고린도 전 11:14, 15) 특정한 경우에, 그리스도인 여자는 신권적 머리를 인정하는 표로 머리 덮개를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린도 전 11:5) 그리고 이것은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자연히 행하던 것과 및 그들이 친숙한 풍습에 일치한 것이었음이 확실합니다.

고린도 회중은 대부분 희랍인들과 유대인들로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여자가 남자보다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모든 민족의 경우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보통, 머리카락을 세 가지 특성으로 분류합니다. 즉 동양인과 인도인의 길고 곧은 머리카락, 흑인과 멜라네시아인의 짧고 양털 같은 머리카락, 유럽인과 셈족의 물결같은 머리입니다. 처음의 두 가지 종류에 있어서는, 머리가 길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남자와 여자의 머리카락은 그 길이에 있어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류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남자의 경우는 “길이가 30에서 40센티미터를 넘지 못하는데, 여자의 경우는 보통 길이가 63에서 76센티미터이고, 1.8미터 혹은 그 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브리타니카 백과사전」, 11판, 12권, 823면.

그리고, 이 그리스도인들은 남자가 적당한 길이로 머리를 자르는 것이 통례임을 알았읍니다. 유대인 남자들이 그러하였읍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렀기 때문에 통례를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읍니다. (민수 6:5) 반대로, 유대인 여자들은 보통 그들의 머리를 상당히 길게 길렀읍니다. (누가 7:38, 요한 11:2) 바울의 논평을 읽은 희랍인들도 여자가 남자보다 머리를 길게 기른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는 여자의 머리를 밀거나 아주 짧게 자르는 것은 그 여자가 노예라든가 혹은 간음이나 음행하다가 발각된 수치스러운 여자라는 표였다는 사실은 그 말을 더 확연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11:6.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정상적 차이점을 들어서 양성의 차이를 예시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한 차이점들은 회중에 속한 자들을 일깨워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머리 길이는 어떠합니까? 정상적 머리카락의 길이가 인종에 따라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습관이나 개인적 기호에 따라도 다릅니다. 서구 세계에서 남성이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로마인의 습관을 따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당시의 유대인 남자들의 보통 스타일보다 훨씬 짧습니다. 비슷하게, 오늘날의 여자들은 흔히들 고대의 여자듣보다 더 짧게 머리를 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기호와 지방 습관에 따라서 그리스도인 남자의 머리 길이가 결정될 것이지만, 그는 그 머리 스타일이 자기가 남자임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머리를 아담하게 단장하며, 그것이 여성미를 나타내도록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들에게 영광이 됩니다.—베드로 전 3:3; 디모데 전 2:9; 고린도 전 11:15.

그러나,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를 막론하고, 그들의 개인 풍채가 다른 사람에게 줄 영향을 고려합니다. 그 목적은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기 위함입니다.—고린도 후 6: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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