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귀에는 시끄럽게 들리는가?
「뉴욕」시 동부 강을 내려다 보는 한 사무실에서 한 청년이 깊이 생각에 잠겨 타자기를 치고 있었다. 돌연히 귀에 거슬리는 폭음과도 같은 소리 문에 이 청년은 거의 의자에서 소스라쳐 올릴 정도로 놀랐다. 정박소(碇泊所)를 떠나려 하는 화물선이 강에 있는 다른 선박에게 『내가 오니 비켜라!』하고 경계하는 소리인 것이었다. 이 고동 소리가 이 청년의 귀에 시끄럽게 들린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마땅히 그러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처럼 우리 귀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가 가두(街頭)를 돌아갈 때 내는 소리, 성미 급한 운전수가 누르는 나팔 소리, 아침에 「스팀」을 때기 시작할 때 나는 클클거리는 소리, 기압찬공기(氣歷鐵孔機)가 길이나 낡은 건물을 뜯어제키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시끄럽게 들리는 소리이다.
이 외에도 방해가 됨으로 시끄럽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뉴욕」시에는 전화소리가 하두 시끄러워서 매년 6불씩 더 지불하면서 전화부에서 자기 이름을 빼버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초인종 소리가 시끄러워서 정복입은 문지기가 지키는 특별한 「아파트」에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시끄럽지 않은 것이 이상과 같은 값을 낼정도로 가치 있게 생각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귀에는 아침마다 울리는 자명시계(自鳴時計)의 종이 시끄럽게 들린다. 그러나 비록 그 소리가 우리 귀에 거슬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또 매일 밤 다시 그 종소리를 장치해 놓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직장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시간마추어 일을 나가야 하고 살기 위하여는 직장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새로운 진리를 들었을 때나 혹은 처음에 귀에 거슬리는 진리를 들었을 때 이처럼 실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명시계』를 아주 무시하는 일이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종소리에 응하는 대신 시계를 두드려 부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갈릴레오」 당시의 유력한 종교가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진리가 아주 귀에 거슬려 그 사실을 알기 위하여 조사하여 보지도 않을 뿐아니라 「갈릴레오」를 투옥하고 심지어 그의 딸까지 고문하여 그의 이론을 철회하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그의 동료 천문학자들은 달이 당구처럼 미끈미끈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그의 망원경 조차 들여다 보는 것을 거절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시끄럽게 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박해한 경우를 여러번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바로」에게 전달한 여호와로부터의 소식이 「바로」의 귀에 시끄럽게 들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자손들의 멍에가 더욱 무겁게 되었다. (출애굽 5:1-14) 「예레미야」 당시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식을 시끄럽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레미야」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그를 진흙 구덩이에 던진 일까지 있었다. 그렇다.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 . .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그 이유는 모두 그들이 전한 소직이 사람들의 귀에 시끄럽게 들렸기 때문이다.—히브리 11:36, 37.
예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천국의 기쁜 소식을 얼마나 시끄럽게 여기었던가! 그들이 이 소직을 얼마나 시끄럽게 생각하였던지 마침내 예수를 못박기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에도 평안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예수의 추종자들이 계속 주의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스데반」의 전도하는 것올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데반」의 말을 좀더 들은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 . . 「스데반」이 . . . 자니라.』 「스데반」이 그들에게 전한 진리가 사람들의 귀에 시끄럽게 들렸던 것은 분명하다.—사도 7:54-60.
여호와의 선지자 「이사야」는 오래 전에 이렇게 될 것을 예언하였고 예수께서도 그의 말을 인용하셨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태 13:15.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 교제를 하던지 간에 진리를 듣는 것을 시끄럽게 생각한다. 아이들의 귀와 특히 십대 소년들의 귀는 부모나 학교 선생이 주는 현명한 충고를 시끄럽게 생각한다. 인종 차별 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 는 것을 시끄럽게 여긴다. (사도 17:26)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와 암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이런 길을 밟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특별히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천국의 소식을 시끄리운 소리로 듣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소식이 색다른 것과 거기에 포함된 의미가 불쾌한 것이다. 이 소식은 마치 자명시계처럼 그들을 잠에서 흔들어 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현명하게 그 종소리에 깨는 대신 그것을 무시하여 버린다. 따라서 그들은 그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값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즉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시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의 감정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 까닭에 그는 사실을 정당히 측량하지 못한다. 그는 교육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의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교육 많은 자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전하는 소식을 시끄럽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들은 것의 뜻을 알아 듣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편견으로 말미암아 맹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끄럽게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와 마찬가지이며 『미련하여 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잡지에 기록된 소식이 색다르다 하여 또 포함된 의미와 전달 방법이 비상(非常) 하다 하여 그리고 기사를 고려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하여 이 소식을 시끄럽게 여기어 듣지 말 것이다. 또 타인이 말하는 장단(長短)으로 결정하지도 말라. 이론과 하나님 말씀으로 당신 자신이 시험하여 보고 이 소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라. 그 후에 당신 자신이 결정 할 것이다.—잠언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