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십니까?
당신은 「파수대」 최근호를 주의깊이 읽어 보았읍니까? 그렇게 하였다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 남자는 어떠한 독특한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그것은 남자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위를 반영할 수 있는 머리 직분의 문제에서 볼 수 있다. 가족 마련에 있어서 남자에게는 자기 이상 지적 머리가 없다. 아내와 자녀는 그를 가족의 머리로 복종한다.—72년 549면.
● 최초의 인간들에게는 왜 그들의 모든 행동을 인도하는 세세한 법전이 필요치 않았읍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심의 기능을 넣어 주셨으며, 창조 사업에서 자신의 개성과 방식과 표준을 밝혀 주심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원칙을 마련해 주셨다.—72년 561면.
●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알게 하고 동시에 성실성과 정직성, 동기의 순수성 및 비이기적인 사랑을 반영함으로써. (고린도 후 4:1, 2)—72년 569면.
● 참 그리스도인은 왜 도박을 승인할 수 없읍니까?
도박은 탐욕의 한 형태이며, 성경은 탐욕과 탐심을 우상 숭배와 동류로 취급하였다. (고린도 전 6:9, 10; 골로새 3:5) 도박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정직하고 생산적인 노동을 하라는 성서의 개념에 반대된다.—73년 12, 13면.
● 어떻게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까?
만일 참으로 동정적인 그리스도인이 순간적 과실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면, 그의 자비로웠던 기록은 불리한 심판을 ‘이기’게 할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현재 가능한 예수의 대속의 희생을 통한 마련을 관대히 적용시키시게 하실 이유를 제공해 준다.—73년 47면.
●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왜 “선한 양심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린 간구”가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전환 곧 돌아서고, 하나님께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희생의 깨끗케 하는 피를 적용시켜 단죄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선한 양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73년 68면.
● 성서는 왜 우리가 성공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울 수 있읍니까?
성서에는 인간의 창조주께서 우리가 현재 어떻게 인간답게 생활하고 행동함으로써 만족하고 뜻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실용적이고, 이치적인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73년 76면.
● 미가 4:5의 내용과 같이 어떻게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할 것을 결의할 수 있읍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헌신한 종이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 놓으신 본을 따르는 길을 택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73년 88면.
● 순응하는 것이 언제는 좋은 일이며, 언제는 피해야 합니까?
성서에 나와 있는 지침에 일치할 때 그리고 목적이 있는 일에 협조하는데 공헌할 때 순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에 반대되는 길을 순응하는 것은 피하여야 한다.—73년 94면.
● 스가랴 9:12에서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에게 “요새”로 돌아 오라고 한 그 “요새”는 무엇입니까?
‘스가랴’ 당시 ‘예루살렘’ 성으로 대표되었던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 이 ‘예루살렘’ 성에는 “여호와의 보좌”라고 불리운 보좌에 ‘다윗’ 왕계의 왕들이 즉위했었다.—73년 1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