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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7
깨87 4/1 3-4면

신도수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

많은 교회에서 신도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탈리아 주재 「깨어라!」(한국어판은 「깰 때이다」) 통신원은 ‘로마 교황청’만이 아니라 많은 가톨릭계 신문과 논평가가 우려하고 있는 바를 다음의 세 연속 기사에서 알려 줄 것이다. 이들을 비롯하여, 다른 관계자들은 교회 신도 수가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로마 교황청’이 우려하고 있다. 작년 5월, 「종파 또는 신흥 종교 운동: 목회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발행되었다. 이 문서는, 교회를 떠나는 가톨릭 교인의 수가 그토록 많은 이유를 심층 분석하기 위하여, ‘교황청’ 산하 4개 부서가 1984년부터 시작한 한 연구의 결과 보고서였다.

‘교황청’ 문서에서는 가톨릭 교인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미래에 대한 염려, 진리의 본질과 그것을 발견하는 방법, 삶의 의미, 신도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일, 배반당하고 속고 착취당했으며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생각, 교회법과 관습에 대한 환멸’ 등의 이유가 있다.

이 말은 마치 예수에게 모여든 군중의 상태에 대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과 유사하게 들린다. (마태오 9:36)a 그 ‘교황청’ 문서는, “교회의 실제 행동에 미흡하고 부적당한 점이 많이” 있음을 시인하였고, “채워 주어야 할 공허한 울부짖음이 교회 내에 존재하고 있음”도 강조하였다. 아울러, “교회 지도자들이 인도력과 인내가 부족하며 개인적으로 한 서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다른 자료에서도 교회를 떠나는 더 많은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 요하네스 밥티스트 메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서방 종교는 철저히 세속화되었다. 종교 내에 잔존해 있던 메시야 사상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하느님에 의한 지배력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하느님은 교회나 신학계 내에서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적, 정치적 쟁점에서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국제적 신학 잡지 「콘실리움」은 스페인의 젊은이들의 상태에 관해 논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세대와 교회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대표한다. 이 두 세계는 서로 거리를 상당히 떨어뜨려 놓고 있다.” 이 잡지에 의하면, 네덜란드, 벨기에, 서독, 오스트레일리아의 상태도 동일하다고 한다.

한 신문의 보도는 그 가톨릭 문서를 가리켜 “경종을 울리는 ‘교황청’의 외침”이라고 하였다. 그 문서는 ‘교구민 사회의 접근법을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 접근법이란 ‘개방적이어야 하며 증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흥 종파들은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며, 따뜻하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그 사람에게 한 성원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게 해주며, 참여 의식과 자발성, 책임감, 의무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그 문서는 지적한다.

오늘날 교회 신도들 가운데 대단히 만연해 있는 종교적 무식 현상을 물리치기 위하여는 “진보적인 신앙 교육”이 요청된다고 하면서, 그 문서는 “하나의 중요한 공동체 형성 요소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재인식해야” 하며 전파 사업을 “성서적 차원”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반성을 하고 나서, 그 문서는 다음과 같은 불길한 어조의 말을 기술한다. “때때로 우리는 국가가 국가의 영역 내에서 과격한 개입을 할 필요성을 인정해야 하며, 심지어 그 조처를 지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국가가 싸움에 개입하여 지원해 주도록 한 이 “권유”를 언론은 놓치지 않았다. 「라 스탐바」지 1986년 6월 4일자에서, 마르코 토사티는 “이것은 가톨릭이 아닌 종교, 특히 소위 ‘종파’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세속적 수단’의 재등장인가?”라고 질문했다.

정부가 이용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이 표현은, 숭배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중세 암흑 시대에 사용된 방법으로 되돌아가기를 ‘교황청’이 원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인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기 위해 정치적 권세자들의 도움을 요청하신 적이 있었는가? 베드로가 그렇게 한 적이 있었는가? 다른 사도들이 그렇게 한 적이 있었는가? 그렇게 한 사람들은 예수를 처형시킬 것을 빌라도에게 애원한 바리새인들이 아니었는가?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영적으로 강함을 증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약함을 시인하는 것인가?

교회를 떠나는 가톨릭 교인들 모두가 다른 종교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중 상당수가 한 특정 종교 단체로 몰리고 있다. 그 단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 오로지 그 단체를 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주]

a 「공동번역 성서」로부터 인용함. 이 기사와 이어지는 두 기사에 인용된 모든 성귀는, 별도의 번역판 표시가 없는 한 「공동번역 성서」에서 인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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