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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0 9월호 20-23면

낙태: 전문가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의학계에서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견해가 변하고 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한때 ‘뉴우요오크’에서 첫째 갔고 가장 분주했던 낙태 시술원의 원장이었던 의학 박사 ‘버어나아드 나단슨’은 극적인 변화를 하였으며 “나는 시술원 원장으로서 사실 60,000건 이상의 사망을 주도하였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부언하기를 “임신이 시작할 때 생명이 시작한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고 말하였다.

‘베드 이스라엘 메디컬 센터’의 ‘하워어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의견을 달리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다면 그것은 만족감이다. 낙태는 존재하지 않는 아기의 생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 태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낙태 수술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다. 하나의 극단적인 반응으로는 죄의식과 절망감이다. 의사들은 엄청난 일관 작업의 낙태를 행하므로 과음하고 악몽을 꾸게 된다고 시인하였다. 다른 극단적 반응으로는 낙태를 행하여 어머니의 생명을 구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만족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있다.

일부 의사들은 엇갈린 느낌을 갖는다. ‘베드 이스라엘 메디컬 센터’의 ‘윌리엄 래쉬바움’ 박사는 한때 자궁 벽에 매달려 낙태를 저항하는 조그만 태아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 그는 그러한 생활을 해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더 이상 그런 악몽은 꾸지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한 인간이다. 나는 느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나는 태아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준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느꼈다. 나는 그렇게 느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낙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나의 그런 느낌을 전할 권리는 없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으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술로 인해 돈을 받는다. ·⁠·⁠· 나는 내가 이혼을 한 후 돈이 많이 필요했을 때 낙태 수술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여자가 자기의 생리적인 운명을 좌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의학 박사 ‘존 스젠즈’는 여자가 낙태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 믿음이 그의 기본 사상이다. 하지만 그는 염수 낙태는 다소 익숙함을 요한다고 시인한다. “염수 주입시 갑자기 자궁 내의 활동이 심해진 것을 관찰하였다. 이것은 자궁 내의 양수(竿水)의 흐름이 아니다. 분명히 이것은 태아가 농도가 강한 염수를 들이마시고 고통하면서 발로 마구 차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점으로 보나 죽음의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그래서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만약 내가 24주되는 태아를 해치우는 일을 시작할 때면, 나는 정신적으로 그 일이 살인에 해당하는지 않는지에 관해 훨씬 더 큰 갈등을 느끼곤 한다.”

‘콜로라도’, ‘덴버’ 소재 ‘베드 이스라엘’의 한 의사는 조기 출산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출생 ‘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낙태 수술을 행했다. 몇 시간 후에 아기가 살아서 나왔고, 그 아기는 얼마간 울다가 죽었다. 그 의사는 아무런 구명 조처도 명하지 않았다. 간호원들은 당황하였고 한 사람은 사임하였다. 이와 비슷한 한 상황에 대하여 ‘덴버’의 한 산과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낙태 수술을 행하면서 태아를 살리고자 하는 것은 마치 사형 집행 대원에게 구급차를 보내는 것과 같다. 낙태 수술의 전체 의도는—어머니와 의사 모두가—태아가 생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많은 간호원들은 충격적인 경험을 해 왔는데, 특히 염수 낙태를 행할 때 그러하였다. 한 연구원은 이러한 많은 낙태가 행해지는 부인과 병동에 근무하는 수석 간호원의 증언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그 간호원은 여러 가지 무서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아기들이 살아서 나오는 경우도 설명하였다. 병원에는 이렇게 살아서 나오는 아기들을 위한 아무런 시설이 없다. 그 간호원은 아기가 살아서 나오게 된 현장에 있게 된 한 의사가 결국 그 아기를 ‘포르말린’이 담긴 ‘버킷’에 넣어 익사시키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낙태된 6개월된 아기들이 생존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른 한 보고는 8개월 된 태아들이 낙태된 것에 관한 것이었다. “의사들이 주사를 놓거나 ‘비닐’ 봉지에 넣어서 질식시켜 죽인다”고 한다. 아기들은 생존할 수 있는데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자는 자기 몸을 지배해야 하지만 태아는 여자의 몸의 일부가 아니라고 종종 주장되고 있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아를 제거하는 일을 맹장이나 쓸개와 같은 인체의 부속 기관을 제거하는 것에 비교해 왔는데 태아는 그러한 인체의 일부나 부속 기관과는 다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아 생리학 연구 교수 ‘A. W. 라일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어느 단계의 태아든지 그것이 어머니의 단순한 인체의 부속 기관이라는 견해를 가질 수 없다. 발생학적으로 태아는 임신 때부터 어머니와는 분리되는 하나의 개체이다.” 그는 계속하여 태아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태아가 그의 부동(浮動)의 세계에서 즐겁게 편안하게 우아한 운동을 하며, 태아가 편안하게 위치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아픔과 접촉, 차가움과 소리 및 빛에 민감하다. 그는 모래집의 물을 마신다. 그 물을 인공적으로 달게 해 주면 많이 마시고 맛이 좋지 않으면 적게 마신다. 그는 딸꾹질을 하고 엄지손가락을 삔다. 그는 깨어 있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그는 반복적인 신호에 대해서는 짜증을 내지만 첫 번째 신호에서 다른 두번째 신호로 바뀌면 그 다른 신호를 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기가 출생할 날짜를 결정한다. 왜냐 하면 진통의 시작은 태아의 일방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 태아들은 낙태 지지자들에게 존재와 정체가 무정하게 무시되고 완강하게 부정되고 있다.”

자궁 내에서의 태아의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재고해 보고 나서 ‘라일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이러한 지식이 태어나지 않은 태아들에 대한 존경을 갖도록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부 사람들은 태아들을 파괴하는 일에 필사적이다. 태아가 어떤 육체적, 감정적 상태에 이르렀을 바로 그때 그들은 더욱 그러하다.” 태아가 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낙태가 그렇게 발전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라일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태아는 조그만하고, 알몸이고, 이름도 없고, 목소리도 없다. 태아를 그러한 쉬운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그의 무방비 상태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질 나이에 도달하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반격할 수도 없다.”

낙태 수술을 거부하는 의사들도 많다. 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낙태 수술을 많이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우리 의사들 중 일부가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행한 선서에 고착하고자 아직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낙태에 관한 그 선서는 이러하다. “나는 요청을 받아도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치명적인 약을 주지 않겠으며, 또 그러한 충고를 해주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낙태케 하는 약을 주지 않겠다.”

낙태에 관한 법조계의 견해들이 극적으로 변해 왔다. 영국의 관습법은 낙태를 하나의 범죄로 간주한다. 임신의 초반기에 행하는 낙태는 가벼운 죄로 간주되었다. 그 이유는 아직 태아가 움직이고 있지 않아서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생명을 느끼는 것”은 임신 후반기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아기가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이 기간에 낙태시키는 일은 중죄 즉 살인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미국의 남북 전쟁 이후까지 초창기의 미국 전역에서 적용되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인 임신은 1827년 독일의 한 과학자에 의해 최초로 정확하게 묘사되었다. 그 이후로 이전에 믿었던 바와 같이 생명은 “태동기”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임신 때에 시작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남북 전쟁 이후 새로 발족한 미국 의학 협회는 과학자들을 여러 위원회와 주 입법부에서 증언하도록 파견하여 생명이 난세포의 수정시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 주게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에 반응하여 1870년대와 1880년대초에 미합중국의 모든 주는 임신 후에 낙태시키는 것을 중죄로 단정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의학 협회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우리는 다름아닌 인간의 생명을 다루고 있다.”

시대는 변했다. 이러한 이른바 “19세기의 낡은 낙태 반대 법”은 미합중국의 법률 기록에서 일소되고만 것이다. 1967년에 ‘콜로라도’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 이후 4년 동안 다른 15개 주에서도 같은 법률을 재정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 3년 동안 다른 33개 주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배척했다. 그러나 친(親)생명 세력의 투쟁은 1973년에 미국 대법원이, 임신 첫 3개월은 요구에 의한 낙태를, 다음 3개월은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제약 아래, 어머니의 건강을 위하여는 출생된 어느 때든지 낙태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패배하고 말았다.

건강을 위해서라고? 대법원의 결정은 ‘도우’ 대 ‘불톤’의 사건에서 그것을 “환자의 복지에 관련된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가족적 및 여자의 나이등의 모든 요소”라고 정의한다. 대법원은 또 다른 사건 ‘로우’ 대 ‘웨이드’소송에서 그 정의를 다음과 같이 확대했다. “어머니가 되는 것 즉 부가적인 후손을 갖는 것은 그 여자에게 고통스런 생활과 장래의 짐을 지우게 할 수 있다. 심리적인 피해가 두드러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아기에 대한 염려로 혹사당할지도 모른다. 원치 않은 아기와 관련이 있는 모두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고, 이미 심리적으로나 다른 이유로 아기를 양육할 능력이 없어 아기를 한 가족 성원으로 양육하는 일이 문제가 될 경우도 있다.”

이들 “건강”상의 이유에 더하여 임신이 초래하는 불편, 고통, 수입의 손실, 교육 계획들을 포기하는 일, 생업을 버리는 일 등이 동시에 고려된다. 간단히 말해서 어머니가 제시하는 어떤 이유로든지 출생전 어느 때나 태아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생각은 국제 가족 계획이란 한 기 기구가 실증해 준다. 낙태를 강력하게 반대하던 ‘마아가랫 생거’가 창설한 이 기구는 피임을 권장하여 낙태의 필요를 사전에 방지할 의도로 설립되었다. 이 가족 계획 기구는 1964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낙태는 아기의 생명이 시작된 후 그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 낙태는 당신의 건강과 생명에 위험하다. 그것으로 당신은 임신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당신이 아기를 가지고 싶을 때 가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산아 제한은 단지 생명의 시작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극적으로 완전히 변하여 현재 이 가족 계획 기구는 인구 통제의 한 수단으로 낙태를 권장한다. 이 기구는 또한 미국 대법원이 미성년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낙태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후원했다. 이전에 이 기구는 “낙태는 아기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고 천명했다. 이제 더 이상 이 말은 이 기구의 출판물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이 1970년 9월 ‘캘리포오니아 메디컬 저어널’지의 논설에 분명히 나와 있다.

“모든 인간 생명에 대한 존경은 서양 의학의 근본이 되어왔고, 의사들로 하여금 모든 인간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치유하고, 연장시키고, 향상시키도록 노력케 해 온 윤리이다. 이 옛 윤리가 완전히 대치되어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낙태시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 계속 증오되고 있는 살인하는 생각에서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주지의 사실 즉 인간 생명이 임신할 때 시작하며, 자궁 내에서든지 자궁 밖에서든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교묘하게 피하게 되었다.”

낙태가 고통을 덜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 또 다른 문제는 어린이 학대이다. 이 이론은 원치 않는 아이들이 학대를 받는데, 그들이 출생하지 못하게 함으로 그 학대를 끝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다음의 한 신문 보도가 폭로해 주듯이 어린이 학대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보다 자유로운 낙태법은 학대받는 어린이들의 수가 줄어들게 하지 않는다. ‘써어던 캘리포오니아’ 대학의 소아과 교수 ‘에드워드 레노스키’ 박사의 5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요구에 의한 낙태’ 법이 통과된 다음에 잔인한 유아 살해와 어린이 학대가 3배나 증가했다. 이것은 ‘생명은 싸다’는 개념이 낳은 당연한 결과이다.” 낙태는 어린이 학대를 치유하지 않고 자궁 내에 있는 수백만의 아이들에 대한 학대를 더하게 하였다.

낙태 판결에 있어서 법정의 노련한 변론은 어떤 범죄 사건의 경우 자신들의 면목을 잃게 하였다. 총을 든 두 사람이 임신한 한 여자를 태운 자동차를 향해 총을 쐈다. 한발의 총탄이 태아를 죽였다. 아이 어머니는 치사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태아를 죽였다는 이유로 무기형을 받았다. 또 다른 경우로는, ‘원피일드 앤더슨’이 남자 쌍동이를 밴 여자에게 총을 쐈다. 제왕절개 수술로 그 쌍동이는 제거되었다. 총탄을 맞은 한 아기는 3시간 반 후에 죽었다. 그리고 다른 한 아기는 15시간 후에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생존하였다. 변호사는 태아들은 “인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윈게이트 쥬니어’ 판사는 어머니가 구타를 당하여 상처를 입은 이유로 나중에 태아들이 죽게 되면 살인에 의한 희생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배심원은 ‘앤더슨’에게 두 사람을 살인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태아를 죽일 것을 요구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고 태아가 어떤 범죄 행위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것은 살인인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아기가 짐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고통이 되기 때문에 아기가 출생하기 며칠 전에 아기의 생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합법적이다. 만약 어머니가 출생한 아기가 짐이 되기 때문에 출생 하루 후에 죽인다면 그것은 살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보시는가? 출애굽기 21:22, 23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신세]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면, 신세]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갚을찌니라]” 주의 깊은 연구가 밝혀 주듯이 원 ‘히브리’어는 그 해를 어머니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아기도 포함시킨다.a

다른 고대 법전들에도 이와 동일한 견해들이 들어있다. 태아를 보호하는 법은 그리스도 수세기 전에 존재하였다. ‘함무라비’ 법전도 그러했다. 그리고 ‘수메리아’인, ‘앗시리아’인, ‘히타이트’인 및 ‘페르샤’인의 고대 법전들도 태아의 죽음을 초래케 하는 구타를 여자에게 가하는 것을 금하였다.

태아는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자궁 안에서 지어진다. 그리고 태아는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다. 우리가 이 기업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다.—시 127:3; 로마 14:12.

[각주]

a 이 성귀에 대한 자세한 토론이 영문 「파수대」 1977년 8월 1일호 478-480면에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21면 삽입]

어머니가, 태아가 출생하기 며칠 전에 그의 생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합법적이다. 만약 어머니가 태아가 출생한 며칠 후에 그렇게 하면, 그것은 살인이다.

[22면 삽입]

태아를 그러한 쉬운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태아의 무방비 상태 때문이다.

[22면 삽입]

“나는 여자에게 낙태케 하는 약을 주지 않겠다.”—‘히포크라테스’ 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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