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열심으로 유명함
여호와의 증인들은 ‘가톨릭’ 교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나라인 ‘스페인’에서 그들의 용기와 열심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성서에 바탕을 둔 그들의 신앙을 고수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인내해 왔다. 1967년 7월 19일자 「크리스찬 센추리」지에서 그들이 받는 대우를 이렇게 진술하였다.
“‘스페인’의 사회 계급에서 최대의 난관을 겪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그 나라의 모든 비‘가톨릭’ 교도들에게 퍼붓는 일반적인 모욕을 다 당하고도, 한술 더 떠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과 관습을 비뚜로 생각하는 많은 신교도들의 발길에 챈다.”
또한, 성서의 요구에 그들이 엄격히 순종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주 ‘스페인’ 관헌들에 의하여 체포, 투옥된다. 이러한 처우에 대하여 「그리스찬 센추리」지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항상 그들을 궁지에 몰아 넣으므로 양심적인 사람들의 의지를 짓밟으려고 시도함으로써 ‘스페인’의 법률은 인간애와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을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이런 배반적인 학대 행위를 보고도 ‘로마 가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규탄하는 일이 없다. ··· 무참히 찔리고 죽어가면서도 당당히 싸우는 투우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이 ‘스페인’의 국민성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숭고한 입장을 취하는 용감한 사람들에게는 갈채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스페인’에서 저명한 ‘가톨릭’교인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용기와 열심을 인정하고 치하한 기사를 써서 발표하였다. 그 기사가 「트리운포」지에 게재되었는데, 제목은 “‘프로테스탄트’ 아닌 ‘프로테스탄트’”였다. 필자인 ‘전국 교구 전도회 연맹’ 총무 ‘엔리케 미렛 마그달레나’ 씨는 서두에서 이렇게 논평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초면인 ‘가톨릭’교인을 붙잡고 ‘프로테스탄트’ 교도와 접촉해 봤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그렇다고 하면서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더라는 대답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선전 운동을 벌이면서 가가 호호 방문하고 수시로 이웃이나 친구를 찾아 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
“그러나 이들 성서의 지지자들은 사람들이야 무엇이라고 믿든지 간에 자기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생각지도 않고, 그저 또 하나의 그리스도교파라고 간주되는 것도 즐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임을 확신한다.”
그 기사는 계속해서 비교적 소수인 증인들이 주는 엄청난 영향력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스페인’에서의 그들 신봉자들은 5,500명에 불과하다. 다해야 적고 미미한 단체이지만, 그들의 강인성과 영향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 ···
“일반 ‘가톨릭’ 교도들과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측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근거가 있다. 미국에서의 그들의 경험에 의하여 조직된 호별 방문 선전은 대성과를 거두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쁘게도 그렇게 성공을 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성실한 사람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봉사에 그들과 함께 가담하도록 감동되었는가? 그 기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지적하였다.
“증인들은 의사 ‘누가’가 사도 행전[사도 5:42; 20:20]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집집으로 다닌’ 기독교의 초기 사도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
“그들은 우상도, 특별한 의식도 없고 단지 성서를 읽고 연구할 뿐이다. 의식이라곤 물의 침례 뿐인데,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받으신 것과 같이 그들은 전신을 잠그는 침례를 베푼다. ···”
그렇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에 밀접히 고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활과 숭배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명하시는 바에 철저히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고 진리의 탐구자들은 그러한 조직을 발견하면, 용기와 열심을 가지고 참 숭배에 그들과 합세한다.